할머니 우리 할머니
詩庭박 태훈
할머니는, 열일곱살 되던해에 시집을 왔습니다
시집온지 벌써 55년이 됐습니다
곱다거나 예쁘다는 소리 할머니는 듣지도 못하고
세상을 살다가 이제 늙어버린 할머니가 됐습니다
시집오던 첫해부터 밭 농삿일 길삼일을 하느라고
허리춤 펼날이 없었습니다 새벽 닭이울면 일어나
밤 열시가 돼서야 몸을 추수릴수가 있었습니다
시집와서 하루도 쉬지않고 일했으니 세상구경을
해보지도,할수도 없었습니다
아이 셋 낳아 둘은 날리고 하나를 키웠습니다
영감쟁이는 술은 고래요 도박은 땡기요 오입은
취민가? 습관인가? 작은댁 두고 살았지요
할머니는 그것이 팔자라고 체념하고 살았습니다
젊어서 경찰서에 영감이 싸움 사건에 말려들어
화해할때 보증인으로 경찰서에 갔었고
나이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선생님께 불려가서 주의듣고 앞으로 책임지겠다고
시인서에 지장도 찍어줬고---
그렇게 살다 보니 영감,아들 명을 재촉해 먼저 가고
오늘 경찰서 보호실에 열일곱 손자놈이 사고를
쳐서 보호자로 불려 나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앞에 대형 거울속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노인네가 있었습니다
퍽도 낮이 익는데--얼마후 할머니는 자신이란걸
알았습니다 아! 저렇게늙었나?
남편 뒷바라지 자식 뒷처리 이제 손자놈 문제까지
먹고살고, 살기 바빠, 거울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내가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게 되었구나!
할머니는 지난 바쁜 세월이 아쉽지도 밉지도 안 했습니다
영감 죽을때도 아들 죽을때도 할머니는 눈물이 없었습니다
바쁜 세월속에 할머니가 묻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보호실에서 경찰관이 손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꼭 잡아줬습니다
이제는 잘하고 살아야 한다
경찰관 아저씨도 말했습니다 사고치지 말아라
할머니 주름살을 봐라! 얼마나고생 하셨는가를--
손자는 고개를 묻었습니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나이들면 주름살만 인생 계급장처럼 나무 나이테 처럼
흔적으로 남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산다는게 그렀습니다
젊을 때는 모두 예쁘게 아름다웠을 것인데--
할머니의 한평생은 주름살이되어 얼굴에 내려 앉았습니다
손자를 앞세운 할머니는 꼬부렁 할머니 걸음으로--
배는 안고프냐? 그래도 손자가 예쁜 모양 입니다
우리 할머니 우리들의 할머니 모습 입니다
할머니의 인생 슬픔도 기쁨도 모두 잊고 살았습니다
할머니의 한 평생 어쩜 우리 할머니 들의 평생이었을
세월은 갑니다 고향 마을역에도 KTX열차가 달리고
열네시간 걸려 가던 서울길이 두시간 반이면 가는시대
할머니께서도 이제 편히 쉬셔야 할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