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천성산 화엄벌 억새물결
산행일시 : 2010년 9월 24일 09:01- 13시 27분(4시간 26분)
산행코스 : 용소마을-용소폭포-도솔봉-화엄벌-천성1봉-은수고개-미타암(11km)
달력에 빨간날 말고도 쉬는날이 있었던가..호사를 누려보며.... 추선연휴 끝 자락.. 전날 설악산의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이른아
침 산정을 찾는 마음은 늘 새롭지요...한여름 내내 한번 찾아가야는데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용소마을에서 천성산정을 밟고
싶은 생각에 용소골에 들어섭니다..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었을 법한 용소폭포를 뒤로하고 한적한 산길로 접어듭니다
너무나 조용한 산길에 홀로 걷는 마음은 평온함 그 자체입니다.. 시간반을 걸었을까,, 무명봉이 나타나는데 누군가가 도솔봉이라
고 명했으니 지니고 있던 지도첩에 표기를 해둡니다
가을 화엄벌....신은 지나치게 깨끗함을 우리에게 주었나 봅니다...지나간 긴 여름과 대조적인 파란 하늘이 먼저 반겨주고 억새꽃
햇살에 반짝이니 너무나 무더웠던 여름날을 이겨낸 자연앞에 숭고해지는 이 가을을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이 가을.... 이름만 들어도 코끝이 싱그럽도록 시린 하늘이 생각나고 억새꽃 만발하니 시몬의 낙엽소리에 시인이되고.. 긴 여름의
고통이 깨끗한 과실로 결실을 맺는 철학의 계절에 인생을 낳고.. 또 다른 고통의 씨앗을 잉태하는 수레바퀴 같은 순환을 마지못
해 어깨에 짊어진 젊은 예수와 같은 계절...나의 마음은 한결 포근함으로 물들어 갑니다
어디를 두고볼까 한곳에 시선이 모아지지 않는다... 사방팔방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자연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가을은 저마다 각
자의 열매를 위해 숨 가쁘도록 분주함이... 자칫 이기적인 생각들로 물들기 쉬운 시간들..결코 삭막하지만 않고 마지막 잎새가 질
때까지 낭만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계절의 한가운데 서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인게 분명해 보입니다
수 많은 문인들은 가을을 예찬하고 노래하지 않았는가..문인이 아니라도 가을의 열병을 주저하지 못해 선술집에서 인생을 토론
했던 젊은날이 있었고... 홀로 켜진 가로등위에 빛나는 달을 보면서 밤새내린 이슬로 머리칼 젖은줄 모른채 하늘을 바라보며 꿈
꾸던 유년시절... 이 모든것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주는 선물인가 봅니다
들릴듯 말듯한 음성으로 바람 불어와 억새꽃 흩날리니... 아련한 그 옛날 억새물결 쫓아가던 이름모를 소녀는 지금쯤 나처럼 반
백이 되었을까...향짙은 차한잔에 창밖에 서성이는 가을과 친구하며 내 마음을 위로하는날.. 진지한 눈동자로 내려보는 파란 하
늘빛에 목마른 시인의 흉내도 내어보고 야심찬 젊음의 꿈을 꾸기도 했던 저 파란하늘...수줍은 노을 한자락에도 감탄사를 연발하
던 그날들은 영원한 가을로 머물기를 바랄뿐이며..이 가을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견더야만 하는가
꿈꾸는 나의 하늘은 그 푸른빛이 너무나 좋아서 바라보는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되고, 오늘은 숲을 만들어, 내일은 또 다른 무엇
이될까
몹시 답답하고 울음울고 싶을때 바라본 나의 하늘은 집이되었고 마음의 호수가되기도 했고 풍요로운 들판이되기도 했는데...화
엄벌 억새물결 춤추는 내 마음은.... 어느새 고운빛에 물들어가는 부서지지 않은 하나의 빛깔로 변해가는가 봅니다
억새물결은 희망을 안고가는 금빛 호수로 변해가니.. 나는 이 산정의 억새꽃 춤추는 화엄벌에서 희망을 긷고싶어 두레박질을 해
봅니다... 늘 마르지 않은 나의 호수인 화엄벌은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산길에 쑥부쟁가 피어 지천이다.... 줏어담으려면 바람이 찾아와 방해를 한다.. 몇번의 시도끝에 한폭의 수채화를 완성할수 있었
다....살면서 비 오는 날이 있으면 맑고 청명한 날이 있듯이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렇고 그렇듯이.. 맑은 날의 쑥부쟁이도 흐린 날
의 쑥부쟁이도, 바람 부는 날의 쑥부쟁이도 나름대로의 미의 형태는 하나의 예술로 승화하고 있음이 다시금 확인하고 있었다. 수
채화 속의 쑥부쟁이 꽃.... 그 아름다움이 가을 산길에 더 많이 머물기를....
화엄벌 산자락은 봄날 붉은 철쭉꽃으로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더니 계절이 두번 바뀌면서 은빛 날개짓 하는 억새꽃 만발하니 파
란 하늘빛과 어우러진 풍경에 감탄사만 외칠뿐 입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굳굳하게 세월을 이겨내었지만 많은비와 바람
에 실려 뿌리마다 아픈 상처를 숨겨놓고도 태연히 웃고만 있구나....
작은새 먹이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풀벌레 이리저리 숨박꼭질 여념없고.. 봄날 뻐꾹새도 울었고, 매미도 목놓아 울던 억새밭
에는 바람이 울고 억새꽃이 흩날린다... 불어오는 바람따라 넓은 바다에 돗올린 조각배 노저어 가듯 분주하기만 하다
은빛 가득담은 여인의 치마폭 마냥 은빛물결 춤을추고.. 서걱이는 소리에 가을이 머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불던 언덕빼기
모든것이 그리움일때 억새는 언제나 흔들거리나 보다...
은빛꿈에 안겨 너울거리는 햇살속에 춤추는 억새빛에 마음은 동심의 세계로 향하고... 이별보다 소중한 만남의 장을 연출하는
넓은 화엄벌은 쉼없이 출렁이는 그리움 탓에 나도 따라 흔들리며 산정으로 향합니다
억새풀의 흔들림은 자신의 아픔을 잊고자 몸부림치는 어느 무희의 한맺힌 절규도 아닌데... 춤사위는 가슴앓이 채색을 하며 젊은
영혼을 태우듯이 흔들리며 가을로 이어지는 계절의 징검다리위에 머물며 철이드는 아이의 사춘기 마냥 눈부신 멀미에 빠져봅
니다
숲에는 억새만 있는것이 아니다... 이질풀이 곱게피었건만 오늘의 주인공은 억새꽃이라 환영도 못한채 산길에 웅크리고 있지요
흰머리 풀어 누굴 그토록 오랫동안 기디리는지 드문드문 보이는 산객들의 환호성은 끝날줄 모르는데... 가을이 불러주는 노랫가
락에 절로 흥겨워 한풀이 춤을추니... 흔들리기 싫어하는 억새의 마음도 몰라주는 신바람난 바람만 산정에 요동칩니다
가는 인생인가.. 다가오는 세월인가.. 반백의 내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여 거울앞에 나를 보는듯...가을숲이 되어바린 억새꽃 당
신...내 청춘이 사치스럽던 여름날을 보낸것이 어그제 같은데.. 벌써 초라하고 백발이 무성하니 세월의 덧없음에 허무함 느끼는
마음 어쩌지요
피할 수 없는 계절의 끝에서 하얗게 변해버린 억세꽃이나... 나의 모습을 거두어 들일 수 없는것은 자연의 진리이고.. 자연에게
순응해야만 하고 부정할수 없는 현실속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굳이 백발을 갘추려고 먹칠하지 않는 내 삶이 아름답게 느껴질때...자연의 아름다운 매력에 빠져 작은 가슴으로 가을날을 노래하
는지 모릅니다
바람부는 언덕빼기 내가 찾아오기를 고개 내밀고 반기는 님이 그대 였나요...출렁이는 은빛 미소는 나의 눈과 이상의 세상에서
같이 호흡하고 느낌으로 말합니다
잘 담구어진 한잔의 곡주처럼.. 스스럼 없이 속내를 보여도 편안하고 부끄럽지 않은 마음이 어울려.. 가을빛 억새 물결에 함께 춤
을 추어도 추하지 않으리....
대운산 자락은 또 어떤 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하고 있을까...건너다 보이는 산자락을 펼쳐 보며서 그속을 헤아려 보건만 미천 한
내 자신이 그 속을 다 알수 있을까
고운빛 구절초야.. 긴 시간을 기다려왔지.. 한송이 꽃을 피우기위해 얼마나 많을 날을 기다렸던가...곱게곱게 피어서 지나가는
산객에게 기쁨주길 바라네....
봄인줄 알았느냐...철도 모르고 피어난 철쭉이 꽃아 부서지는 가을볕에 내 삶보다 더 안스럽게 느껴집니다
나는 오늘 가을이 스쳐가는 언덕에서 굳굳히 홀로선 하얀빛 작은울림의 억새꽃 향기에 취했습니다...바람에 나풀 거리는 여인의
치마자락 같은 포근함과 때로는 우수에 젖은채 바람따라 먼산만 바라보는 서글픈 인생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만큼 맘 비우면 깃털보다 희어질까 ..저토록 고운 눈매는 별빛일까 달빛일까... 깊은 당신의 음성 귀를 열고 들어봅니다
산은 자꾸만 빈 산으로 비어 가더라도 그리움은 영원하고 사랑의 슬픔도 영원한것...그 그리움과 슬픔을 잊고자 머문날이 아름
답게 빛나는 가을볕에 묻혀가기를...
훗날 우리가 떠난 후에도 그곳에서 영원할 것 같이 산자락을 밟고 서있는 억새꽃이여... 그대 그림자 사이사이로 천 년의 그리움
을 보았습니다
금빛 노을이 젖어드는 저녁 숲이면 찬이슬 내리는 산마루에.. 꽃향기 온산을 뒤덮을때 달빛에 취한 채 춤을 추는 하얀 억새꽃 군
무를 상상하며 산정을 내려섭니다
또 하나의 지상의 별자리같은 소박한 꿈을 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