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빈 자루
빈 자루
- 여강 최재효
태초에 임은 빈 자루로 만드셨다
자루에 햇볕이 쌓이고
훈풍이 돌면서
쓸데없이 검은 혀바닥이 모여 들자
자루는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ㄱ ㄴ ㄷ ㄹ ㅁ ㅂ이 현신하시고
A B C D E F G가 옷을 입고
天 地 玄 黃도 슬그머니 아는 체를 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자루는
가득 차서 곧 터질 듯 했다
자루에 눈먼 황금이 넘쳐 나고
근원을 알 수 없는 피가 담기다가
똥이 충만해지면
금방 욕으로 빵빵해지기도 하는
탈색된 복음福音으로 풍만한
여기 저기 온통
자루, 자루, 자루 투성이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e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in Earth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 皆空度 一切苦厄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저기
칼바람 눈보라 휘날리는 쪽방 촌에
빈 밥통 끌어안고 죽은 어떤 빈 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