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 이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라 ♣

결혼하기 전까지 내 별명은 ‘칼’이었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매몰차다고 붙여진 별명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런 인간미 없는 별명을 은근히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내게 아이가 찾아왔다. 갑작스런 임신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첫아이 경모를 낳고 한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냈다. 그러다 경모가 돌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던 경모가 밤이 되자 열이 40도까지 올라갔다. 정작 소아과 의사인 남편은 코를 골며 자는데, 나 혼자 한 시간마다 열을 재면서 목이 부어 해열제를 못 삼키는 아이에게 좌약을 넣어 주고 온몸을 미지근한 물로 마시지해 주기를 몇 차례. 새벽녘에야 간신히 열이 떨어졌다. 조그만 몸으로 아픔을 호소하던 아이는 그제야 칭얼거림을 멈추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때였다. 가슴이 뭉클하게 차오르면서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보통 때였으면 왜 나만 이런 고생을 해야 하냐며 남편을 깨워 화를 냈을 것이다. 그리고 경모가 잠들면 나도 파김치가 되어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새근거리며 잠자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 느꼈던 뿌듯함은 그 어떤 성취의 순간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외롭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도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을 자기희생이라고 여긴다. 이 '희생자 모드'에 빠지면 부모 노릇은 온통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누구나 사랑을 하면 상대방의 요구에 맞추어 나를 바꾸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한편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 가장 불행한 법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머릿속에서 '희생'이라는 말을 지워 버려라. 부모라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당신이 그것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신의진
희생(犧牲)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에 것은 제 스스로 결정한 능동적인 희생이고 뒤는 타인에 의해 일어나는 수동적인 희생입니다. 자신을 이야기 할 때는 대개의 경우 능동적인 희생입니다. 초가 자신을 태워버리면서 주변을 밝혀주는 건 수동이고 어떤 일이나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것과 또 자식을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치는 건 능동이며 국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은 능동일 수도, 수동일 수도 있습니다. 희생 속에는 헌신(獻身)과 봉사(奉仕)가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配慮)가 있습니다. 예전에 대가족 제도하의 가족관계는 가족 구성원들의 서로에 대한 희생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핵가족 시대에는 가족 간의 유대관계와 희생은 남에 나라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해코지를 하는 세상에 서로에게 희생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합니다. 월급을 받으며 회사의 일을 하면서도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입니다. 희생의 가치는 조건과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조건 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가에 있습니다. 또한 희생에는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희생을 강요하지 않지만 희생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과 나눔이 삶의 근본인 이유입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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