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사진/대한불교.태고종.원해사

조계종.천태종.태고종.

호온산업 2013. 8. 2. 10:48

  ◆ 조계종과 천태종, 태고종

 

 

  조계종의 '조계'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참선으로 깨우침을 얻은 6조(1조 달마로부터) 혜능이 주로 머물던 곳이 조계산이었고 그를 조계스님이라 하여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는 화엄종, 법화종, 천태종 등의 종단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종단이지만 조계종은 이름은 중국에서 따 왔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우리나라만의 종단이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교학(敎學)이라는 방법(공부해서 알게되어 깨우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교종"이라 하고 참선이라는 방법(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느낌으로 깨우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선종"이라 한다.

고려 때 우리나라에는 많은 선종과 교종이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 불교통합책으로 유명한 9개의 선종을 하나로 묶어서 조계종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일제 때 일인들이 스님들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바람에 결혼하신 스님과 독신으로 사시는 스님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 두개의 종단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결혼하지 않고 끝까지 남은 조계종 스님과  결혼하신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 만든 게 태고종이다.


  조계종 안에서도 다시 참선을 여전히 중요시 여기지만 그 방법과 해석을 달리하는 스님들이 천태종, 진각종 등의 옛 종단을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이 분파되어 간 것이다. 

 

               천태종 대본산 구인사

 

 

  ● 천태

 

  천태종은 동아시아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이다.  '천태종'이라는 명칭은 6세기의 승려로서 이 종파의 실질적 개조이며 위대한 설법자였던 지의(智)가 거주하며 가르침을 폈던 중국 동남부의 천태산에서 유래한다.  이 종파의 기본경전은 〈법화경 法華經〉이며, 이때문에 '법화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태종의 기본적인 교의는 '삼제원융'(三諸圓融)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데,  첫째, 모든 현상은 존재론적 실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空)의 진리,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임시적으로는 존재하고 있다는 가(假)의 진리,  셋째, 모든 현상은 비실체적이며 동시에 임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첫째와 둘째의 진리는 포용하면서도 초월한다는 절대적인 중(中)의 진리이다.

 

  이 3가지 진리는 각각 다른 두 진리를 서로 포용하며 각각은 나머지에 이미 속해 있다고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점에서 현상적 세계를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동일시한다. 삼제원융의 가르침은 북제(北齊) 혜문(慧文)의 가르침이지만 천태종의 창립에 크게 공헌하여 개조로 간주되는 인물은 제3대 조사 지의이다.

 

  지의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당시에 이미 불교의 온갖 교의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며 다만 듣는 이들의 정신적 자질에 따라 점차적으로 펼쳐내었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전제에 의거하여 불교 경전 전체를 체계화했다. 그 가운데 <법화경>을 석가모니의 모든 가르침을 담고 있는 최고의 교리서로 간주했다.

 

   

 

  ● 태고종

 

  태고종은 한국 불교 27개 종단의 하나로 원융회통의 정신으로 통일한 태고 보우(太)국사를 종조()로 하며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滿)한 근본교리 봉체()와 태고보우국사의 종풍()을 선양하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종지()로 삼고 있다.

  한국불교계는 해방 후 전국승려대회의 결의에 따라 '조선불교조계종총본사태고사법'과 조계종명을 폐지하고 '조선불교'라는 단일 종단으로 출범하였으나 3대 교정(종정)인 송만암 스님에 의해 '조계종'으로 종명이 환원되었다.

  1954년 5월 대통령 이승만이 가정()을 가지고 사는 중들은 다 사찰에서 물러가라는 특별담화 이후 조계종은 독신을 주장하는 세력과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으나 5.16군사정변 후 불교재건위원회에 의해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을 종명으로 통합 종단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중앙종회 구성의 쌍방 이견 대립으로 1970년 1월 박대륜()을 종정()으로 하여 통합종단에서 분리하여 태고종() 종단을 발족하고 '한국불교조계종'과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의경전은 <금강경, 화엄경>이며, 사설사암 중심의 조직으로 약 3,100여 개의 사찰을 두고 있다. 종단의 주요기구는 총무원, 중앙종회, 중앙사정원, 승정원, 포교원 등이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 25개 교구본사와 미주지역에 해외특별교구가 있다. 태고종은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운영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제도인 교임제도를 두고 있다.

 

  태고종의 가장 큰 특징은 종단이 10여개의 큰 사찰을 제외하면 3천여개의 사설 사·암(寺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사설 사·암이란 개인이 설립한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은 사찰을 말한다. 불교법란으로 전통사찰에서 물러난 스님들을 주축으로 건립한 사찰이 대부분이다.

  태고종은 총단의 종무행정을 총괄하는 총무원을 비롯 직할 8개 종무원과 11개 지방종무원, 2개 해외종무원 등 21개종무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님 7천 여명과 사찰 2천8백 여개, 신도 7백3십만 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한국불교의 전통문화인 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와 제48호 단청을 보유하고 있다.

 

 


  ● 조계종


  한국 불교 최대의 종단인 조계종은 한국 불교 26개 종단의 하나로 신라 때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이며 도의국사(道義國師)가 개산(開山)한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기원하여,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인 지눌(知訥)의 중천(重闡)을 거쳐, 보우국사(普愚國師) 태고(太古)가 구산(九山)을 통합하여 조계종이라 공개적으로 이름붙인 데서 비롯되었다. 창종(創宗)의 정신은 보조국사에 연유하는 선 ·교 일치(禪敎一致)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排佛政策)의 결과로 명맥만 유지하면서 선 ·교 양종(禪敎兩宗)의 8도도총섭(八道都總攝)제도가 임진왜란 때까지 계승되어오다가, 그 후 한말까지는 남북총섭시대(南北總攝時代)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이 양립하였는데, 선종은 조계종 ·천태종(天台宗) ·총남종(摠南宗), 교종은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시흥종(始興宗)이었다.

 

  1911년 일제의 불교 통합정책에 의하여 사찰령(寺刹令)이 제정되고 31본산(本山:本寺)제도가 생기면서 선 ·교 양종의 명칭이 사용되었고, 1913년에는 31본산 연합사무소 위원장제도가 실시되다가, 1923년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이사(理事)제도가 되었고, 1924년에는 선 ·교 양종을 통합하여 조선불교조계종이 설립되었다.

 

  당시 총본산은 태고사(太古寺:지금의 조계사)에 있었는데, 산하 31개 본산의 주지는 조선총독이 승인하였으며, 말사(末寺)인 1,384사의 주지는 도지사의 승인사항이었다. 광복 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으나 1954년부터 1962년까지는 비구(比丘) ·대처(帶妻) 승려 간의 분규가 끊이지 않아 이른바 불교정화운동이 계속되었고, 그 결과 1962년 4월 비구 ·비구니만을 인정하는 통합종단으로서 대한불교조계종이 재발족,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헌(宗憲)에 의하면 이 종단의 종지(宗旨)는 석가모니의 ‘자각각타 각행원만(自覺覺他覺行圓滿)’의 근본교리를 받들어 수행 ·실천하여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의 법을 전함으로써 중생을 제도(濟度)함에 있다. 종단의 주요기구로는 중앙종정기관(中央宗正機關)인 총무원과 최고의결기관인 중앙종회(中央宗會)가 있고, 별도로 포교원(布敎院) 등이 있으며, 지방에 25교구본사(敎區本寺)가 있으며, 이들은 그 밑에 말사를 거느린다.

  25교구본사는 총무원 직할의 서울 조계사를 비롯하여 경기 화성군의 용주사(龍珠寺), 양주군의 봉선사(奉先寺), 강원 양양군의 신흥사(神興寺), 평창군의 월정사(月精寺), 충북 보은군의 법주사(法住寺), 충남 공주군의 마곡사(麻谷寺), 예산군의 수덕사(修德寺), 경북 금릉군의 직지사(直指寺), 대구의 동화사(桐華寺), 영천군의 은해사(銀海寺), 의성군의 고운사(孤雲寺), 경주시의 불국사,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海印寺), 하동군의 쌍계사(雙磎寺), 양산군의 통도사(通度寺), 부산의 범어사(梵魚寺), 전북 김제군의 금산사(金山寺), 고창군의 선운사(禪雲寺), 전남 장성군의 백양사(白羊寺), 구례군의 화엄사(華嚴寺), 송광사(松廣寺), 해남군의 대흥사(大興寺), 제주 제주시의 관음사(觀音寺) 등이다. 종단본부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堅志洞) 45 조계사 경내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OO종이라고 불리우는 불교의 종파는 수 십 개가 있다.  그 중에서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종단을 꼽으라면 대체로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을 꼽는다.  조계종과 천태종은 고려시대의 역사에 등장하는 종파이지만,  태고종은 1970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현대의 종단이다.

 

  원래 조계종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결성한 종단의 이름으로 참선을 근본수행으로 하는 종파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종파를 없애고 그냥 교종과 선종으로 양분하였는데,  일제시대에 와서 조선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를 통합하였다.  해방 이 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그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옛부터 내려오는 거의 모든 전통사찰과 불교의 주류를 답습하여 한국을 대표하고 있으며 독신출가자인 비구와 비구니를 기본으로 구성된다.

 

   일제 치하에서 한국의 불교는 정책적으로 일본불교화되었고 그 결과 일본의 전통을 따라 승려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처럼 결혼하여 가족을 거느리는 승려를 대처승이라고 한다.  해방이 되고 난 후 한동안 조선불교조계종은 비구승과 대처승이 혼합되어 종단의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문화의 잔재를 뿌리뽑는 과정에서 왜색불교를 추방하자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급기야  이승만 대통령이 대처승을 몰아내야 한다는 유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 결과 불교는 쫓아내려는 비구승과 지키려는 대처승간의 투쟁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는데,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다가 법원의 판결로 대한불교조계종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된 대처승 측이 1970년도에 고려말 태고 보우국사의 법호를 따서 태고종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태고종은 제반 의식에서 조계종과 공통점이 많으나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천태종 中祖 상월(上月)스님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이 창종한 천태종은 조선시대에 와서 그 명맥이 끊어진 것을 1966년 상월스님이 단양의 구인사에서 천태종이라 이름하여 새롭게 종단을 조직하였다. 천태종은 새로운 교리와 종단체계로 급속하게 성장하여 짧은 기간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현재의 천태종은 고려의 천태종을 계승했다고 표방하고 있으나 상월조사를 불보살의 위치로 격상시키고 비구니가 머리를 깍지 않으며 기타 수행의 방법들이 고려시대의 천태종과는 많이 상응하여 전통불교보다는 신흥종교의 성격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 상월 스님(1911~1974)
  올해는 상월 스님(1911~1974·사진) 탄신 100돌을 맞는 해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상월 스님은 한국 종교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신도를 확보한 ‘대한불교 천태종’을 일군 장본인이다. 천태종은 신도 수 250만명으로 조계종, 태고종과 함께 불교계 3대 종단의 하나다.
 

  하지만 역사는 반백년이 채 안 된다. 중국 천태 지자(의?)대사와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맥을 잇는다는 종명을 천명했지만, 현대 ‘대한불교 천태종은 상월 스님의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그래서 전국 최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충북 소백산 구인사 맨 꼭대기엔 문화재급으로 2000년 완공된 국내 최고 목조건물 ‘상월원각대조사전’이 있을 정도로 천태종에서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100년 전인 1911년 음력 11월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에서 태어난 상월 스님의 속명은 박준동(朴準東)으로 본관은 밀양. 호는 원광(圓光). 상월은 법명이다.  아버지는 영진(永鎭), 어머니는 삼척김씨이다. 

  45년부터 소백산 구인사에 터를 잡고 수행에 전념해 깨달음을 얻은 뒤 66년 천태종 중창을 선언하고 포교하다 74년 4월 27일.  종단운영·중생교화·중창불사 등으로 인한 과로로 병을 얻어서 "죽고 사는 것이 본래 공적(空寂)"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64세로 입적하였다. 

 

   불교의 전통예식인 다비(茶毘)를 행하지 않고 구인사의 주봉 석강(石岡)에 봉분하여 안장한 뒤 적멸궁(寂滅宮)이라 하였다.

 

 

  천태종은 대조사 100돌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우선 <상월대조사 법어>와 <한국 천태종사>를 정리해 출간했다. 법어집은 ‘깨달음의 대중화’를 표방한 그답게 불법의 요체를 쉽게 전하고 있다.  

 

  상월 스님은 6·25 직후 의료시설이 빈약해 서민들이 의료혜택을 보기 어려웠던 그 시절 구인사에서 기도와 민간요법을 통해 병을 치료해주면서 ‘소백산의 생불’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고승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역사적인 전통성이 없으면 우리는 그 위대성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나중에 역사가 그를 평가할 따름이다.

 

 

 

  ● 화엄의 세계

 

부석사 전경, 멀리 첩첩이 벌여지는 백두대간의 장엄함이 화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의상대사가 여기서 처음으로 화엄종을 열었다. 

 

  화엄종은 화엄경(華嚴經)을 주요경전으로 삼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당초 인도에서 화엄종의 시조는 용수(龍樹)·세친(世親)이었다. 중국에서는 창시자 법장(法藏)이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서 '현수'(賢首 : 보살의 이름)라는 법호를 하사받았으므로 현수종이라고도 하고,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을 주장했으므로 법계종이라고도 불린다.

 

  화엄종의 특색은 법계연기론에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理:본체)와 사(事:현상)는 서로 장애가 되지 않으며, 사와 사 또한 서로 원융하다고 본다.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여서 우주 만물이 서로 융통하고 화해하며 무한하고 끝없는 조화를 이룬다는 교리이다.